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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그리스 원정과 그리스 도시들의 대처 아테네 테미스토 클레스 아테네에서는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밀티아데스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전쟁 영웅에 걸맞지 않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마라톤 전투가 끝난 직후 밀티아데스는 그의 명성을 이용해 70척의 배와 군자금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해군을 이끌고에게 에게해에 있는 타로스 섬을 공격했는데 그가 이 섬을 공격한 이유는 단지 사적인 원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파로스인들이 성벽 안에 틀어박혀 방어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밀티아데스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아테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파로스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밀티아데스를 향한 민심도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특히 아테네 정치인 크산티포스는 밀티아데스가 아테네시민을 기만했다면서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더보기
마라톤 전투 (아테네 승리와 필리피데스 이야기) 아테네 침공 기원전 494년 페르시아는 이오니아 반란을 완전히 제압했습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오니아로 파견된 마르도니우스는 참주제를 없애고 민주제를 실시했습니다. 페르시아에 총성을 바친다면 어느 정도의 자치는 허용하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다리우스왕은 아직 아테네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테네는 페르시와 동맹을 맺는 조건으로 땅과 물을 바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테네가 이오니아 반란세력을 도왔으니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배반 행위로 보였을 겁니다. 마르도니우스는 아테네를 응징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지만 폭풍으로 큰 피해를 입고 페르시아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트라키와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의 속국이 됐습니다. 다리우스는 또다시 원정을 준비했는데 그것과는 별도로 그리스가 싸울 의지.. 더보기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 동기 스파르타 국가의 힘 기원전 508년 아테네에서는 클레이 스테네스가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단행한 개혁을 통해 아테네는 전보다 훨씬 더 부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리스 최강대국이 스파르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스파르타는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주변 지역을 굴복시켰고 기원전 500년경에는 아르고스를 제외한 펠레폰네소스 반도 전체와 펠레폰네소스 동맹이라 불리는 군사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코린토스와 테베도 펠레폰네소스 동맹에 참여했습니다. 스파르타는 전쟁시 동맹국의 맹주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아테네라 할지라도 스파르타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아테네는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페르시아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합니다. 아테네에서 보낸 사.. 더보기
페르시아, 아테네 독재제와 민주정치 도입 과정 페르시아 독재제 다리우스 기원전 522년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에 머물고 있을 때 페르시아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인물은 마고스 사제 계급에 속하는 파티제이테스였습니다. 그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공교롭게 그는 죽은 캄비세스 동생 스메르디스와 똑같이 생겼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헤르도토스에 따르면 그의 이름도 같은 스메르디스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캄피세스가 동생의 죽음을 비밀에 붙였기 때문에 스메르디스가 죽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파티제이테스는 이 점을 노려 그의 동생 스메르디스를 왕위에 앉힌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캄비세스에게 들려오자 그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둘러 말 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칼집에서 떨어진 칼이 그의 허벅지에 꽂힌 일이 발.. 더보기
페르시아의 영토 확장 (그리스, 이집트) 키루스 그리스 정복 기원전 550년경 그리스가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동방에서 한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훗날 대왕이라 불리게 될 키루스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로 태어난 키루스는 여러 번 죽을 위기를 겪는 등 꽤 험난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장사한 키루스는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스티아게스가 다스리는 메디아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했던 페르시아는 오랫동안 메디아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르시아가 승리할 확률은 희박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스티아게스는 오랜 폭정으로 민심을 잃었고 메디아의 총 사령관이었던 하르파고스도 아스티아게스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르파고스는 키루스와 싸우는 대신 군을 이끌고 키루스에게 토왕했습니다. 그 덕분에 키루스는.. 더보기
고대 그리스 식민지 개척과 참주제 등장 그리스 식민지 개척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본토를 떠나 식민지를 개척한 건 기원전 9세기 무렵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주로 이오니아 지방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식민 활동이 시작된 기원전 750년부터 향후 200년간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에 그리스의 식민지가 세워졌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인들만큼 활발한 식민 활동을 벌인 나라는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카르타고가 유일했습니다. 잘 알려진 식민지로는 아테네가 세운 나폴리 코린토스가 세운 시라코사 그리고 스파르타가 세운 타란토가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 식민지들이 무역 기지의 성격을 뛰었고 가끔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식민지를 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건설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 더보기
테베 코린토스 역사와 아테네 민주정 시대 테베 암흑 시대가 끝난 그리스에는 폴리스라 불리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 폴리스는 성벽으로 둘러싸여진 도시뿐 아니라 그 주변의 농촌과 다양한 정착촌을 포함했습니다. 폴리스 인구는 시민의 가족과 노예 그리고 외국인의 수를 모두 합쳐 대략 4만에서 5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성기의 아테네는 30만의 인구를 가졌고 스파르타 인구는 그보다 많은 40만 정도였을 거로 추정됩니다. 그리스의 폴리스가 세워진 때는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아테네와 테베 그리고 코린토스가 건국된 시기는 까마득히 먼 옛날인 미케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도시들의 초창기 역사는 많은 부분 신화에 둘러싸였지만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역사적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중부 보이오티아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