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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 인물 (추대사) 페리클레스 기원전 446년 스파르타와 아테네 양국은 30년 휴전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 덕분에 양국은 얼마간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도 아테네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력을 넓혔는데 이들의 다음 희생양은 사모스였습니다. 사모스는 밀레토스와 더불어 이오니아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아테네는 사모스에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직접 함대를 이끌고 원정에 나선 페리 클레스는 여러 번의 전투 끝에 사무스를 굴복시켰습니다. 이 전쟁으로 아테네는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차지했습니다. 페리 클레스 자신도 이오니아 최대의 도시를 정복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페리클레스 통치하에서 아테네는 번영.. 더보기
아테네 키몬과 페리클레스 키몬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기세를 몰아 바다에서도 페르시아군을 격파했습니다. 그러자 이오니아와 아이홀리스 그리고 에계헤에 있는 많은 도시들이 그리스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본 건 아테네였습니다. 그때까지 그리스의 맹주는 단연 스파르타였습니다.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스파르타는 그리스 연합군의 대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는 가장 많은 함선을 보였음에도 군의 지휘권을 항상 스파르타의 양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파르타 특유의 결정 장애와 지휘관의 기행으로 스파르타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 합류한 도시 대부분이 스파르타가 아닌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이로써 막대한 재원과 군사력을 등의 업은 아테네는.. 더보기
두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파우사니아스의 마지막 테미스토클레스와 파우사니아스의 최후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어서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격파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페르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페르시아는 30만 병력 중에서 먼저 도망친 4만을 제외한 거의 전원이 전사는 괴멸적인 피해를 받습니다. 파우사니아스는 마르도니오스가 남긴 식기와 가구를 보자 마르도니오스에게 올렸던 것과 똑같은 요리를 내오라고 했습니다. 곧이어 요리사가 페르시아 시계에 담긴 산해진미를 대령가자 파우사니아스는 그 화려함에 경악했습니다. 장난삼아 그 옆 테이블에 스파르타 음식을 나란히 올려놨었는데 그 차이가 너무 심해서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계기가 돼서였는지 카오사니아스는 이때부터 수상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플라타이에서 뒷정리를 끝.. 더보기
플라타이아 전투와 페르시아의 몰락 테미스토 클레스 기원전 480년 그리세군이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한 크세르크세스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tn적인 우세를 앞세워 쉽게 그리스를 제압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편 승리를 맛본 테미스토 클레스는 곧장 헬레스 폰토스에 있는 다리를 파괴해 페르시아군의 퇴로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에우리비아데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만약 적의 퇴로를 끊는다면 공지에 몰린 페르시아군은 더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적이 본국으로 도망치게 내버려 두자고 말했습니다. 계획이 틀어지자 테미스토크레스는 페르시아 쪽에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지략과 용맹을 모두 갖춘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을 받아 이곳.. 더보기
그리스의 승리 살라미스 해전 그리스 연합의 해군 기원전 480년 테르모 필레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상대한 페르시아군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그리스군 전사자가 약 2천명 정도였던 것에 비해 페르시아군은 그의 10배에 달하는 2만의 전사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해상부대 전령을 보내 전투 현장을 둘러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시체 대부분이 페르시아인이었기 때문에 그대로의 현장을 보여준다면 사기가 하락할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해군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아군의 시체를 매장했습니다. 하지만 전장을 둘러본 해군은 유독 그리스 군신체만 한곳에 모여 있는 걸 보고 전사자수를 감추려는 왕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군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꽤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 더보기
스파르타 300 테르모 필레 전투 크세르크세스 그리스 원정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로 진격하기 위해 헬레스 폰터스 해협에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군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먼저 다리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이집트인과 페니키아인을 시켜 다리 두 개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완공되자마자 폭풍이 불어와 다리를 모두 파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에 크게 분노한 크세르크세스는 바다에 300대의 채찍형을 가하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다에 채찍을 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짜고 쓴 물아 너의 주인께서 내게 벌을 내리셨다. 너의 주인께서 아무런 해도 깨치지 않으셨는데 네놈이 먼저 주인님께 화를 당겼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는 파괴한 다리를 공사한 책임자를 처형하고는 다시 새 다리.. 더보기
페르시아의 그리스 원정과 그리스 도시들의 대처 아테네 테미스토 클레스 아테네에서는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밀티아데스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전쟁 영웅에 걸맞지 않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마라톤 전투가 끝난 직후 밀티아데스는 그의 명성을 이용해 70척의 배와 군자금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해군을 이끌고에게 에게해에 있는 타로스 섬을 공격했는데 그가 이 섬을 공격한 이유는 단지 사적인 원한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파로스인들이 성벽 안에 틀어박혀 방어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밀티아데스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아테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파로스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밀티아데스를 향한 민심도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특히 아테네 정치인 크산티포스는 밀티아데스가 아테네시민을 기만했다면서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