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썸네일형 리스트형 플라타이아 전투와 페르시아의 몰락 테미스토 클레스 기원전 480년 그리세군이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한 크세르크세스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tn적인 우세를 앞세워 쉽게 그리스를 제압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편 승리를 맛본 테미스토 클레스는 곧장 헬레스 폰토스에 있는 다리를 파괴해 페르시아군의 퇴로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에우리비아데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만약 적의 퇴로를 끊는다면 공지에 몰린 페르시아군은 더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적이 본국으로 도망치게 내버려 두자고 말했습니다. 계획이 틀어지자 테미스토크레스는 페르시아 쪽에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지략과 용맹을 모두 갖춘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을 받아 이곳.. 더보기 그리스의 승리 살라미스 해전 그리스 연합의 해군 기원전 480년 테르모 필레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상대한 페르시아군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그리스군 전사자가 약 2천명 정도였던 것에 비해 페르시아군은 그의 10배에 달하는 2만의 전사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해상부대 전령을 보내 전투 현장을 둘러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시체 대부분이 페르시아인이었기 때문에 그대로의 현장을 보여준다면 사기가 하락할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해군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아군의 시체를 매장했습니다. 하지만 전장을 둘러본 해군은 유독 그리스 군신체만 한곳에 모여 있는 걸 보고 전사자수를 감추려는 왕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군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꽤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 더보기 페르시아, 아테네 독재제와 민주정치 도입 과정 페르시아 독재제 다리우스 기원전 522년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에 머물고 있을 때 페르시아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인물은 마고스 사제 계급에 속하는 파티제이테스였습니다. 그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공교롭게 그는 죽은 캄비세스 동생 스메르디스와 똑같이 생겼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헤르도토스에 따르면 그의 이름도 같은 스메르디스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캄피세스가 동생의 죽음을 비밀에 붙였기 때문에 스메르디스가 죽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파티제이테스는 이 점을 노려 그의 동생 스메르디스를 왕위에 앉힌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캄비세스에게 들려오자 그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둘러 말 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칼집에서 떨어진 칼이 그의 허벅지에 꽂힌 일이 발.. 더보기 페르시아의 영토 확장 (그리스, 이집트) 키루스 그리스 정복 기원전 550년경 그리스가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동방에서 한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훗날 대왕이라 불리게 될 키루스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자로 태어난 키루스는 여러 번 죽을 위기를 겪는 등 꽤 험난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장사한 키루스는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스티아게스가 다스리는 메디아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했던 페르시아는 오랫동안 메디아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르시아가 승리할 확률은 희박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스티아게스는 오랜 폭정으로 민심을 잃었고 메디아의 총 사령관이었던 하르파고스도 아스티아게스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르파고스는 키루스와 싸우는 대신 군을 이끌고 키루스에게 토왕했습니다. 그 덕분에 키루스는..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