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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19세기 프리드리히 니체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프리들이 니체의 별명은 망치를든 철학자였다.
    별명에 맞게 그는 근대의 서구문화 전체를 전복하려고 했다. 니체가 진단한 유럽 사회는 병들고 건강하지 못했다. 병의 원인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는 서구의 이성중심주의 철학과 예수 이후에 그리스도교 사상이었다.

     

    니체의 좋음과 나쁨

    특히 니체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기반한 윤리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대비되는 고대 그리스의 도덕권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갔다.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좋은 건 아픔 그리고 성과 악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이 어휘들을 섞어서 사용하는데 좋음과 선은 다르다 예를 들어 명품 핸드백은 좋은 것이지만 선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싸구려 핸드백은 질적으로 나쁜 것이지만 악한 것은 아니다. 니체는 이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는 선악의 구분 대신 조음과 나쁨의 구분만 있었다.

     

    여기서 좋은 것은 주인의 생활 방식을 말하고 나쁜 것은 노예의 생활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 주인과 노예는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신분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덕목이 달랐다.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 도덕은 지배자 계급의 도덕으로 여기에는 진취성과 확실성 결단력 창조력 등이 내포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주인은 주인처럼 행동한다. 자신이 주인이므로 법을 만들거나 폐기하는 등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 그는 도덕의 구속받지 않고 도덕의 기준을 스스로 창조해 나간다.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 도덕은 건강하고 좋은 것이다. 반면에 노예의 도덕은 나쁘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강압되는 부자연스럽고 억눌린 도덕이다.

     

    노예의 도덕은 겸손, 근면, 친절, 순종, 질서의 수능 등이 강조된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순종적이고 겸손하고 착해야 하는 계급은 노예계급이다.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노예 도덕의 본질이 분노와 원한 힘을 밝혔다.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인에게 현실적으로 복수하지 못하는 억눌린 노예들의 원한이 그들의 도덕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노예의 도덕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불렀으며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교가 바로 이 원한의 도덕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형이상학

    기원전 6세기에 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후로 유대 민족은 언제나 다른 제국의 식민지 노예였다. 니체에 따르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대인의 도덕은 원한으로 시작되었고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주인에 대한 그들의 원하는 점차 왜곡되고 이상화되어 결국에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즉, 노예들은 자신들이 가진 도덕인 겸손, 금면, 순종, 수능 등을 선이라는 개념으로 뒤바꾼다. 그리고 주인의 진취성과 결단력 창조력 등은 악이라는 개념으로 가치 절하한다. 마음속에 소심한 복수가 형이상학적 체계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결국 유대인에 의해 좋음은 악이 되고 나쁨은 선이 되는 가치전도의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으로부터 발생한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성과 악의 개념을 공고히 했다는데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 사회 전체를 장악하면서 유럽인에게 선과 악이라는 원한의 도덕관을 뿌리깊게 심어놓았다 무엇인가 억눌리고 금욕적이며 겸손하고 희생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로 유럽이 병들어 가고 있다고 니체는 판단한 것이다.

     

     

    니체의 도덕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 덕은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건강한 도덕이다. 그러나 노예의 도덕은 타인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된 병든 도덕이다. 그렇다면 치료제는 무엇인가 인류를 다시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니체의 처방은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시된 초인사상과 영원 회귀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영혼 회개는 같은 우주가 무한히 처음으로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이치사상의 주요 개념이다. 쉽게 말해서 영원 회귀에 따르면 나는 나의 삶이 끝나고 정확하게 나의 삶을 그대로 다시 살게 된다. 이것은 힌두교나 불교에서의 윤회와는 다르다. 윤회는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지만 영혼 회계는 지금 자신의 삶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변화나 목적이나 이유는 없다. 나의 부모님과 다시 함께 유년기를 보내고 동일한 대입시험에서 동일한 문제를 풀고 동일한 결과로 동일한 대학에 가서 같은 사람과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며 같은 날짜에 결혼하고 같은 아이를 낳고 같은 회사에 다니고 내가 죽었던 동일한 날짜에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는 순간부터 나는 또다시 내 삶을 새롭고도 동일하게 반복한다.

    어떤가 끔찍한가 아니면 기쁜가? 영혼 회계는 우리로 하여금 삶과 순간이라는 두 종류의 시간의 가치를 전복시킨다. 기존에는 80년의 삶은 길고 지금이 순간은 짧았지만 영원 회계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80년의 삶은 유한하지만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한 시간임을 말이다. 영원한 순간에 비교해 볼 때 80년의 유한한 삶의 길이는 영에 수렴한다. 영원 회계사상은 가장 극단적인 허무주이다. 하지만 허무는 허무해서 끝나지 않는다. 영원 회개를 깨닫는 순간 그는 허물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지금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 있고 의미있게 창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지금이 순간은 내 평생의 삶보다 훨씬 긴 무한히 반복될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된 존재는 지금까지의 삶을 초월한 초인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니체는 우리에게 제안한다. 순종적인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하는 주인이 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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