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르크세스 그리스 원정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로 진격하기 위해 헬레스 폰터스 해협에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군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먼저 다리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이집트인과 페니키아인을 시켜 다리 두 개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완공되자마자 폭풍이 불어와 다리를 모두 파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에 크게 분노한 크세르크세스는 바다에 300대의 채찍형을 가하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다에 채찍을 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짜고 쓴 물아 너의 주인께서 내게 벌을 내리셨다. 너의 주인께서 아무런 해도 깨치지 않으셨는데 네놈이 먼저 주인님께 화를 당겼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는 파괴한 다리를 공사한 책임자를 처형하고는 다시 새 다리를 설치하게 했습니다. 이때 약 6천 척의 배를 나란히 세워 그 위에 나무 판자를 올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다리가 건설됐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높은 언덕에 올라 전군의 위용을 바라보면서 큰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크세르크세스는 기뻐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습니다.
곁에 있던 아르타바노스가 왜 우는지를 보자 크세르크세스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 누구도 100살까지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페르시아군은 꼬박 일주일에 걸쳐 헬레스 폰투스 해협을 건넜습니다 페르시아군의 지위를 맡은 인물은 마르도니우스와 오타네스 였는데 그 밑에는 페르시아 각지에서 여러 부대를 지휘하는 많은 중간 지휘관들이 있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그 중에서도 여성 지휘관인 아르테미시아를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할리카르나소스와 그 주변 섬에 참주였던 아르테미시아는 다섯척의 배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 배는 시돈에서 온 배 다음으로 평판이 높았었다고 합니다. 또 그녀는 모든 중간 지휘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의견을 냈을 정도로 탁월한 지휘관이기도 했습니다. 진격하게 앞서 크세르크세스는 데마라토스를 불러 그리스인들이 감히 페르시아에 맞서 싸울지를 물어봤습니다. 데마라토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먼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스의 예속을 강요하시는 전하의 제안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란 것입니다. 설령 그리스인 모두가 전화의 뜻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스파르타만은 반드시 페르시아에 맞서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스파르타인은 일대일 결투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며 단결할 경우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됩니다. 그들은 자유롭지만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법이라는 왕을 섬기는데 그들이 이것을 두려워하는 정도는 신하가 왕을 두려워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섭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데 왕의 명령은 단 한 가지 즉 어떤 대군을 맞이하더라도 절대 적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가볍게 우선 넘겼다고 합니다.
헬레스 폰투스를 건넌 페르시아군은 트라키아를 지나 그리스로 진격했습니다. 이때 페르시아 군이 지나는 길에 있던 그리스 도시들은 병사들에게 식량을 제공해야 했었는데 워낙 병사들이 많아 도시의 재정이 파탄날 지경이었습니다. 이를 목격한 어떤 그리스인은 크세르크세스가 저녁을 두 번 먹는 습관이 없는 것에 깊이 감사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군이 리소스 강을 식스로 썼을 때는 강의 아예 말라버렸다고 하니 페르시아군의 규모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과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 그리스도시들의 사신을 보내 땅과 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에는 사신을 보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페르시아 사신을 구덩이와 우물 속에 밀어 넣고 그곳에서 땅과 물을 가져가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이어 사신들이 돌아왔는데 땅과 물을 받은 사신들이 있었던 반면에 몇몇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땅과 물을 바친 도시 중에는 테살리아와 테베가 있었고 테스피아이와 플라타이아 두 도시를 제외한 보이오티아 거의 모든 도시들도 땅과 물을 바쳤습니다. 한편 페르시아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테살리아는 코린토스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코린토스에는 그리스 각 도시에서 온 대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테살리에서 온 사신은 만약 그리스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면 페르시아의 항복할 수밖에 없을 거라면서 원조를 촉구했습니다. 그리스 입장에서도 테살리아를 잃는다면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완충제가 없어지는 셈이었기 때문에 지원군을 보내기로 합니다.
곧이어 아테네의 테미스토 클레스가 이끄는 1만의 그리스군이 협소한 템페 계곡에 집결에 페르시아군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리스군은 템페에 도착한지 얼마 안 돼 페르시아군이 다른 길로 우회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만약 페르시아군이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포위 당하거나 무방비로 후방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리스군은 어쩔 수 없이 군을 퇴각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테살리아를 포함한 그리스 북부 대부분을 페르시아에 내주게 됩니다.
테르모 필레 전투
궁지에 몰린 그리스는 수군과 육군으로 나뉘어 테르모 필레와 아르테미시온을 방어하기로 합니다. 이 두 지점은 근접해 있어서 서로의 정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테르모 필레는 테살리아와 남부 그리스를 잇는 좁은 통로로 남부 그리스로 가려면 꼭 통과해야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테르모 필레 서쪽으로는 험준한 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바다가 있었는데 가장 좁은 곳이 술의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통로에 진입하는 곳에는 성벽까지 있어서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테르모 필레를 방어하기 위해 동원된 그리스군은 대략 5000에서 6000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종교 행사 기관과 겹쳐서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리스군의 지위를 맡은 인물이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였습니다.
레오니다스는 직접 300명의 결사대를 선발했는데 이들은 모두 아들이 있어서 죽어도 큰 미련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참고로 레오니다스는 테베가 부대를 파견하는지에 대해 유독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시점의 테베는 기회를 봐서 그리스를 배반하고 페르시아의 항복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라도 일단 부대를 보내왔습니다. 얼마 페르시아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페르시아군의 엄청난 규모를 확인한 그리스 진영에서는 철수할지를 놓고 논쟁이 있었지만 레오니다스는 계획대로 테르모 필레를 방어하기로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척후기병 한 명을 보내 그리스군의 동태를 살피게 했습니다. 척후병은 돌아와서 스파르타 병사들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빗고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생사에 갈림길에서 한가롭게 머리나 빗는 스파르타인들이 가소롭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데마라토스가 이들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생사를 건 모험을 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자들과 스파르타 본국에 있는 나머지 부대를 격파하면 전화에 진격을 막을 민족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전하께서 맞이하는 상대야말로 그리스의 수 많은 나라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나라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부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세르크세스는 그렇게 소수의 병력이 어떻게 자신의 군대를 막을 수 있겠냐면서 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바로 공격을 명하는 대신 4일을 기다리면서 그리스 군이 도망가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5일째가 돼도 그리스 군이 꿈쩍도 하지 않자 크세르크세스는 마침내 공격을 명했습니다.
스파르타군이 상대한 첫 번째 상대는 메디아 출신의 페르시아군이었습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양쪽 다 많은 전사자를 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페르시아군이 스파르타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길이 워낙 좁아서 페르시아군의 숫자 우세는 큰 의미가 없는 데다 기병을 투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전투는 온종일 계속되지만 메디아인 부대는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해야 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친위대인 불사부대에게 공격을 명했습니다. 불사부대는 페르시아 최정의 부대로 부대원이 죽거나 병에 걸리면 다른 누군가를 선발해 항상 1만명의 부대원을 유지했기 때문에 불사부대라 불렸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불사부대를 투입함으로써 전황이 달라지길 기대했겠지만 이들도 스파르타인을 상대로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해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리스군의 창이 페르시아군의 창보다 더 길었기 때문에 그리스군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군은 이에 더해 도망치는 척하다 적이 쫓아오면 갑자기 방향을 돌려 공격하는 식으로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렸습니다. 특히 스파르타 최강의 전사로 알려진 디에네 케이스의 용맹은 타의 추종을 부여했다고 전해집니다.
누군가 그에게 페르시아군이 쏟는 화살이 하도 많아서 태양을 가릴 정도라고 말하자 디에네 케스는 오히려 시원한 그늘 속에서 싸울 수 있게 되면서 좋아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여러 부대를 번갈아 투입하면서 공격을 감행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때 전투를 관전하던 크세르크세스는 전투가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세 번이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고 합니다. 페르시아군은 다음 날에도 공격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다시 그리스의 승리였습니다. 이틀 동안의 전투에서 연이어 패하자 크세르크세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예상치 못한 행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피알테스라는 어떤 그리스인이 찾아와 산 중에 테리모 필레를 돌아가는 샛길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그곳에 부대를 파견했습니다. 한편 레오니다스도 이 샛길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천명의 중무장 보병을 보내 그곳을 수비하게 했습니다. 페르시아군이 이 샛길을 따라 올라오자 깜짝 놀란 그리스 병사들은 산 정상으로 올라가 죽을 각으로 전투에 대비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군은 이들을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산을 내려갔습니다.
스파르타의 용감한 결사대
그대로 산을 돌아서 레오니다스의 후방을 공격할 셈이었습니다. 날이 밝자 페르시아군이 샛길을 통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레오니다스에게도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레온이다스는 부대를 해체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는 그곳에 끝까지 남아 싸우기로 합니다. 그런데 테르모 필레에 남은 부대는 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레온티 아데스는 계속해서 테베를 의심했기 때문에 레온티아데스가 이끄는 태백은 400명을 강제로 남겨 싸우게 했습니다.
이 밖에 약 700명의 테스피아인들이 남기로 했는데 이들은 자진해서 싸우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페르시아군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죽을 각오로 싸웠지만 사방에서 공격해오는 페르시아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무렵 그리스군의 창은 대부분 부러져 있어서 병사들은 칼을 휘두르면서 페르시아군과 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마저 없는 병사들은 손과 이빨로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둘씩 그리스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레오니다스 마저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레온티아데스가 이끄는 테베 부대는 끝내 그리스를 배신하고 페르시아의 항복했습니다. 테베인들은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전투에 휘말리게 된 거라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지만 항복한 테베인들의 이마에 왕의 인장으로 낙인을 짓게 했습니다. 한편 남아있던 그리스인들은 성벽 너머에는 작은 언덕에 함께 모여 마지막 싸움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궁수를 투입해 소낙비 같이 화살을 퍼부어댔습니다. 그렇게 테르모 필레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모두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군의 전사자도 2만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 전투에서 크세르크세스의 형제가 둘씩이나 전사했을만큼 페르시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테르모 빌레에서 전사한 스파르타인들을 추모하는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행자여 가서 스파르타인들에게 전해라 우리가 그들의 말에 복종에 여기에 누워 있다고 페르시아군은 테르모 필레를 뒤로하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진군했습니다. 하지만 테르모 필레를 겪은 이들의 마음속에는 그리스인에 대한 새로운 경외심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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