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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형이상학 탈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의미

    서양 철학을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필수적인 인물들이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 입니다. 그리고 아리스토 텔레스에 의해 하나의 학으로 확립된 형이상학은 서양철학을 알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필수지식 입니다

     

    형이상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알기를 원한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첫 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내용입니다. 나는 언제쯤 성공할 수 있을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원하는 재산을 모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런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보다 궁극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습니다

     

    예를들어 나는 언제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인지 나는 왜 태어난 것이며,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인간은 자신과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이 어떻게 보면 모든 학문의 시작을 알린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근원 형이상학

    존재와 존재자에 대해 궁극의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먼저 플라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플라톤은 세계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첫번째, 이데아의 세계

    두번째, 현실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는 이성의 눈으로만 보이는 가지계이고 현실의 세계는 감각의 눈으로만 보이는 가시계 입니다. 그리고 이데아의 세계가 진짜 세계이고 현실의 세계가 가짜 세계 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보면 쇼파와 의자가 2개 있습니다.

    쇼파도 의자이고 의자도 의자입니다

     

    다르게 생겼지만 둘다 의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자에 기능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기능을 가지면 전부 의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쇼파에 앉으면 편한 하겠지만 의자에 앉으면 조금 불편합니다.

     

    그래서 쇼파를 의자를 좋은 의자, 의자를 나쁜 의자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의자의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하면 좋은의자이고 나쁘게 수행하면 나쁜 의자입니다. 그렇다면 의자에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의자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완벽한 의자가 있어야 의자에 좋고 나쁨에 기준이 있을 수 있고 그래야 좋은 의자 나쁜 의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주장

    그렇다면 완벽한 의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현실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데아 세계의 의자가 진짜 의자이고 현실세계 의자가 가짜 의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받아들이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플라톤의 체계를 받아들이면 도대체 현실 세계가 왜 존재해야 되는지 설명할 길이 없어 진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가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한 세계라고 합니다. 왜 그러한 모방의 세계가 존재해야 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둘째, 플라톤 식의 이데아를 상정하면 이 현실 세계에서의 변화와 운동을 설명할 길이 없어집니다. 그 이유는 이데아의 세계는 완전하므로 운동과 변화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모방한 현실의 세계에서 운동과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단지, 비유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아리스토 텔레스는 두 가지 숙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플라톤이 만들어 놓은 이데아의 세계를 붕괴 시켜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현실 세계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장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보겠습니다. 쇼파도 의자이고 의자도 의자입니다. 둘 다 다르게 생겼지만 둘다 의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쇼파와 의자에 모두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자 기능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앉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전부 의자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앉을 수 없는 것은 의자가 아닙니다. 즉, 어떤 기능이 바로 그것에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과 본질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형상만 가지고서는 이런 의자들을 만들 수 없습니다. 재료가 있어야 합니다. 쇼파의 재료는 가죽이고, 의자의 재료는 나무입니다. 이러한 가죽이나 나무가 앉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지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의자란 재료와 형상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들은 재료와 형상이 결합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저 위에 올려 놓고서, 이 현실 세계는 가짜라고 표현합니다. 이 점이 두 철학자의 이야기가 다른 부분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에 형상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서는 그 형상을 현실 세계로 다시 끌고 내려온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를 하나의 현실 세계로 통일 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진을 보면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