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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그리스 대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인물 소개

    파르메니데스는 약 515년 ~ 450년 사이에 활동한 그리스의 철학자 입니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철학의 초기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노년의 논문"으로 현실에 실재하는 것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철학적인 주장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현실은 변화하지 않으며 고정되어 있다고 이야기 하며, 모든 변화와 다양성은 인식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파르메니데스 철학적 주장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명제를 내세운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에는 하나의 변함없는 실재만 존재하며 이것을 '존재'한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즉,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만 있다고 봤습니다. 이 뜻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겨날 수는 있습니다. 예를들어 생물의 암수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면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없던 수정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암수의 세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들이 생겨난 것을 생각해보면 빅뱅이나 신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생겨난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생성이나 변화했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없는 것을 먼저 머릿속에서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순서대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파르메니데스는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없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수도 말할 수도 없는, 없는 것에서 어떤 있는 것이 생겨났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있지 않은 것은 없다'가 말해주는 것들 밀레토스 학파가 물질들을 한 가지로 환원해 추상적 사유를 했고 피타고라스는 추상적으로 조화로운 세계를 기술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가 세계를 변화와 로고스의 원리로 설명했다면 파르메니데스는 변화하는 감각 세계를 논리적으로 포착해 새로운 철학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단적으로 그는 잊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하나의 명제에서 있는 것. 즉, 존재하는 것의 성질들을 추론해 내었습니다. 일단 존재하는 것 이전에 없는 것은 없으므로 존재하는 것의 기원은 물을 수 없습니다. 기원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기에 무엇에도 기대지 않은 완전한 것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또 하나 세상에 없는 것이 없다면 있는 것만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는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만약 있는 것이 여러 개 있다면 있는 것들 사이에 그것을 구분해주는 없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없는 것은 없다고 했으니 있는 것은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단 하나의 의미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것을 일자라고 합니다.

     

    세상에 일자밖에 없다는 건 운동도 변화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있는 것이 운동을 하려면 없는 것으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또 지겹게 반복하지만 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도 없습니다. 변화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늙으려면 일단 현재의 젊은 내가 없어져야 그 자리에 늙은 내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없음은 없으므로 지금의 나는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없음을 통과해 늙음으로 변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이란 눈과 귀 촉감 등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의하지 않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하나의 전제에서 있는 것의 성질들을 논리로만 추론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론을 펼친 파르메니데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파르메니데스야말로 고유한 의미에서 철학을 시작했다. 이렇게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에는 변화도 감각을 따르지 말라. 운동도 없으며 영원 부동의 일자만이 있다고 논변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꾸만 세상을 변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걸까요. 바로 자신의 감각을 믿기 때문입니다. 감각으로 인식한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합니다. 우리는 변화와 운동을 감각해 그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이 감각을 통한 경험은 믿을 수 없는 것이고 환상이자 기만이라고 봤습니다. 자신이 이미 논리로 충분히 증명한 바 없다가 있거나 있다가 없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학문을 연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참된 진리를 따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의견을 따르는 길입니다. 의견의 세계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있는게 아닙니다. 저마다 자신의 경험이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며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파르 감각적 습관을 따르는 것이 아닌 이성을 통해 참된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리란 무엇인가요.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의 길을 밝히기 위해 파르메니데스는 그토록 골치 아픈 논리를 펼쳐 불변하는 단 하나의 것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 불변의 일자는 이성을 통해서만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 눈 앞에 컴퓨터 책상 휴대폰 등등은 일자가 아닌 다자 입니다. 이 다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지만 단 하나 공통적인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존재입니다. 바로 이 존재가 완전하고 충만한 일자이자 이 세계의 본질인 것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결국이 참된 존재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즉 이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파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의 세계에서 자기 중심을 잡으며 덧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은 냉철한 삶의 자세를 견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파르메니데스가 철학사에 남긴 것.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파르메니데스의 작업은 이후 형이상학 탐구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형이사각이란 인간의 주관심리나 감각을 배제하고 논리적 사유만으로 세계 원리를 탐구하려는 학문입니다. 특히 파르메니데스는이 형이상하게 분과인 존재론을 정초했는데요. 존재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존재 자체를 사유로 포착하려는 학문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제로 존재론을 펼쳤습니다. 철학의 인식론 역시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라는 대상을 그저 내 감각이나 사유로 포착하는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착하려는 나. 즉, 인식 주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사유할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유할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무나 추상적이고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써먹기 힘든 철학의 형이상학과 인식론은 결국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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