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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메소포타미아 고대 문명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역사

     

     

    문명의 시작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오늘날 황량한 모래 사막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보면 이곳이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상지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까마득한 옛날인 기원전 4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찬란했던 하이테크 고대문명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바빌로니아 문명이었습니다.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인간이 본격적인 농경생활을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6000년경이었습니다. 작은 운하를 만들어 강물을 끌어 들이는 것이 가능해지자 척박했던 메소포타미아 남부에까지 점차 많은 거주지가 생겨났고 그 결과 이 지역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났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000년 경에 인류 최초의 도시 우루크가 세워졌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수메르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이때가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이었는지 보면 최초의 피라미드가 건설되기 2천 년 전이 었고 아직 매머드가 살아있을 때 였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도시였기 때문에 우르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돌이나 깎고 있던 미개인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세련된 도시 인의 이미지에 더 가까웠습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이 무렵 바퀴와 도로 그리고 벽돌이 처음 만들어졌고 심지어 하수도 시설까지 완비돼 쾌적한 도시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가장 중요한 발명이라 할 수 있는 문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초기의 복잡한 상형문자에서 점차 간소화 된 쐐기문자는 점토판에 기록됐는데 지금 우리가 이 문명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 대부분이 이 점토판으로 부터 온 것입니다. 수메르 인들은 교육을 중시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꽤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곳에서 학생들은 쐐기문자와 수학 등을 배웠고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 후 중요 직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후대인 우르 제3왕조 시대의 기록 이긴 하지만 한 학생의 관점에서 이 시대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점토판 기록이 있습니다. 내용에는 내가 학교에 도착하자 반장이 왜 늦었는지 물었다.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께 인사 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생님이 내 점토판을 읽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서 나를 매로 때렸다. 반장이 내가 허락 없이 떠들었다면서 매로 때 렸다. 반장이 내가 허락 없이 일어 섰다고 매로 때렸다. 반장이 내가 허락 없이 문 밖으로 나갔다면서 매로 때렸다. 반장이 내가 수메르 언어로 말하지 않았다면서 매로 때렸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기 싫어 졌고 선생님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선생님께 뇌물을 주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저를 더 친절하게 대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 그에게 향유를 바르고 옷과 반지를 선물 하고 뇌물을 주자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참 좋은 학생이구나. 게다가 아버지께서 이렇게 많은 것을 선물 해주시니 너는 이제부터 반장이 되겠고 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도시로서의 기반시설을 갖추 고 성장을 거듭한 우루크는 그 시기에는 엄청난 규모인 6만의 대도시 가 되었습니다. 길가메시를 비롯해 우루크의 여러 전설적인 영웅 들이 활약했던 때도 바로 이 시기 였습니다. 우루크가 시대에 맞지 않게 너무 발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우루크의 탄생시기가 기원전 4천년보다 훨씬 전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2750년 경 유프라테스 강줄기가 좀 더 동쪽 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우루크의 그림자에 가렸던 수메르의 다른 도시들이 대도시로 성장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도시로는 우르, 라가시, 키시 그리고 니푸르가 있었습니다.

     

     

    우르는 우루크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졌던 도시였고 우르의 통치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뿌리가 우루크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갔다고 하는데 성경의 갈대의 우르가 수메르의 우르를 지칭하는 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참고로 우르의 지구라트는 오늘날까지 잘 보존 되고 있습니다. 라가시는 다른 도시 국가들과는 다르게 네 개 이상의 도시들이 연합한 최초의 영토국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강한 군사력 을 보유했습니다. 기원전 2500년 메살림의 통치 아래서 전성기를 맞이한 키시는 당시 세력을 넓히고 있었던 라가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잠시나마 수메르 지역의 패자가 됐습니다. 메살림 왕은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청했고 이후 키시의 왕이라는 칭호는 키시 지역의 왕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수메르 지역의 패자라는 상징적 의미 또한 갖게 됩니다. 니푸르는 군사력보다는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도시의 왕들은 니푸르를 차지해 그의 군사행동에 대한 정통성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수메르에서 가장 먼저 통일 전쟁을 일으킨 인물은 루갈 작기시였습니다. 기원전 2340년 움마의 통치자였던 루갈 작기시는 군사력과 외교를 통해 라가시와 우르 그리고 니푸르 를 차례대로 굴복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루크마저 정복한 루갈 작기시는 마침내 수메르 전 지역을 통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그의 왕국 또한 사르곤이라는 인물에 의해 무너지게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사르곤은 수메르 북쪽에 위치한 아카드 지역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아카드에는 이전부터 도시가 건설 되긴 했지만 무역기지 정도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고 수메르에 비하면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촌 동네였습니다. 키시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힌 사르곤은 몇 년에 걸쳐 아카드를 정복했고 이후 수메르를 공격했습니다. 수메르의 도시들을 하나씩 함락 시킨 사르곤은 마지막으로 그의 숙적 루갈 작기시가 다스리는 우루크를 공격해 승리했습니다. 패배한 루갈 작기시는 목줄에 묶여 질질 끌려 다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