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노동자 계급
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라 전체 상품 생산 과정 중에서 하나의 과정을 반복하게 되었고 이는 특정 노동자가 언제든지 다른 노동자의 의해서 대체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는 이제 생산과정 중 하나에 부품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특히 이전과는 다르게 노동자가 더 이상 생산 시설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작은 규모지만 자신의 집에서 소유한 생산 시설로 물건을 만들어 냈지만 이제는 자본가들이 투자한 생산 시설에서 노동력 만을 제공하는 형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공장의 노동자는 이전처럼 기술자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생산 과정에서의 부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공장주, 더 정확하게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노동자가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병이 나거나 노동을 하는 와중에 다쳤다고 해도 언제든지 그를 다른 노동자로 대체해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최소한의 임금만을 주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이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노동 양을 쥐어 짜내고자 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만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았고 일부 자본가들은 현금이 아니라 공장의 생산품을 임금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 집을 나눠 쓰기도 했습니다. 산업화 초기 일부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 즉, 기계 파괴의 운동을 벌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던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히나 더 열악한 집단이 있었습니다. 이는 아동노동자들이었습니다. 산업화 초기 아직 아동 노동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없었을 때 많은 자본가들이 더 적은 임금을 줘도 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고용 했습니다. 아동들은 성인 남성의 10%에서 20%의 임금만 받으며 15시간 많게는 18시간 가까이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네 살밖에 안된 아이들이 공장이나 광산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 가구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식들을 공작으로 보냈기 때문에 아동 노동은 더욱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당시 아동 노동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 보기 위해서는 1833년과 1844년 통과된 공장법이 큰 도움이 됩니다. 최초로 아동 노동을 규제하는 이 법규에서 11살에서 18살 사이의 노동자는 하루에 최대 12시간 9살에서 11살 사이 노동자는 최대 8시간에 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으로 정한 최소한의 조건을 보면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될 때 많은 자본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이 법의 반대했습니다. 산업형 정력이 떨어진다 등 아동 노동 양이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노동자 가구의 임금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역으로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던가 등의 논리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조직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노동자 개개인은 언제든지 잠재적인 노동자에 의해 대체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맞설 수는 없지만 한 공장의 노동자 전체 혹은 더 크게 한 산업 분야에 노동자 전체가 조직된 모습을 갖추게 되면 자본가들이 쉽게 노동자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노조는 자본가로부터 노동 환경의 개선을 요구할 수 있었고 자본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파업을 통해서 자본가에게 타격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헌법으로 보장된 노조 결성에 권리와는 달리 당시까지만 해도 노조는 사회적으로 극심한 논란의 대상이었고 많은 파업은 국가의 무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합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기 노조의 등장 보다 이후 역사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노동자계급 의식의 형성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 개인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동자 계급이라는 한 집단에 속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어쩌면 자신이 어느 민족에 속하는 지보다 어느 계급에 속하는 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프랑스 노동자라면 같은 프랑스인 자본가 보다 민족은 다르더라도 같은 계급에 속하는 독일 노동자와 더 비슷한 이해관계와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가 이후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를 관통할 작은 책자인 공산당 선언에서 망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라고 말할 때 굳이 만국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문장 못지않게 이후 역사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그 바로 앞 문장 일지도 모릅니다. 노동자가 혁명에서 잃은 것은 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 이다는 문장입니다. 노동자 계급이 역사 발전의 담지자라는 이러한 의식은 이후 19세기 유럽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 됩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가리키며 19세기 유럽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이중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제 유럽은 더 이상 왕, 귀족, 성직자 그리고 농민 이라는 틀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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