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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군사력

     

     

    아시리아 세력

    기원전 900년경 고대세계는 아직 암흑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바빌로니아는 오랫동안 신흥세력인 아람인과 동쪽 엘람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란 남부에 위치했던 엘람 제국은 수천 년간 바빌로니아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던 고대 문명이었 습니다. 기원전 1157년 엘람은 카슈 인을 몰아내고 몇 십년간 바빌론 을 통치했습니다. 30년이 흐르고 난 뒤에야 바빌로니아인들은 바빌론을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아시리아 또한 주변 세력의 침략을 받고 침체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전통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군대가 뒤를 받쳐주고 있어서였습니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꾸준한 무기 개량이 있었습니다. 공성탑과 파성추 같은 공성무기로 도시 성벽을 무력화했고 병사들은 철제갑옷과 투구를 착용했습니다. 기병 전술을 최초로 도입한 것도 아시리아였습니다. 아시리아는 예비군뿐만 아니라 언제든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상비군을 유지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시리아가 전성기에 동원할 수 있던 최대 병력 은 대략 60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다드 니라리 2세가 왕위에 오른 기원전 911년 아시리아는 비로써 군사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리아는 향후 30년간 아시리아를 위협하고 있었던 아람인을 몰아냈고 남쪽 으로는 바빌로니아를 위협해 평화 조약을 맺게 했습니다. 이로써 아시리아의 영토는 메소포타미아 북서부 전체를 아우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전성기는 이제 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아시리아는 이후에도 꾸준히 유능한 왕들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것은 아시리아가 후계자 양성에 유독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후계자로 임명된 왕의 아들은 계승의 집이라는 곳에 들어가 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시리아의 왕자가 계승의 집에 대해 남긴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점을 치는데 익숙한 학자들과 하늘을 연구했다. 나는 난해한 수학 문제를 풀었고 수메르인의 문자와 어려운 아카드어를 읽으면서 대홍수 이전의 기도문을 읽는 기쁨을 누렸다. 나는 중 무장한 궁수처럼 아리투 방패와 카바부 방패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기원전 883년 잔인한 성격의 아슈르 나시르팔 2세가 왕위에 오르자 아시리아는 더욱 위세를 떨쳤습니다. 군사 원정을 떠난 아슈르나시르팔은 먼저 반란을 일으킨 아람인들을 진압하고 이들을 모조리 학살했습니다. 아시리아는 강력한 군사력만큼이나 무자비한 잔혹행위로 큰 악명을 떨쳤습니다. 반란을 주도한 우두머리는 끌려가 산채로 가죽이 벗겨졌고 주민들까지 산채로 불태워졌습니다. 강제 이주로 아시리아는 값싼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장점은 이들의 민족성을 없애 반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시리아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는 구약성서가 쓰였던 시기와 맞물려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당시 고대인들이 얼마나 아시리아를 증오했는지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 요나라는 유대인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 말씀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네베로 가는 대신 배를 타고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다시스는 오늘날 스페인에 있는 도시로 당시 기준으로는 세상의 끝이었습니다. 그만큼 요나는 아시리아가 미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폭풍이 일어 배가 가라앉게 되자 선원들은 모두 각자의 신에게 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요나는 배 밑에 숨어 잠만 잘 뿐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선원들은 이 폭풍이 누구의 탓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선원들은 요나를 들어 바닷속으로 던졌고 폭풍은 가라앉았습니다. 한편 요나는 죽지 않고 하나님이 미리 준비 한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3일 후 물고기는 요나를 땅으로 토해냈고 요나는 결국 니네베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시 니네베는 걸어서 통과하는 데만 3일이 걸릴 정도로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요나는 성읍으로 들어가 40일 후에 니네베는 무너질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왕에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니네베 주민 들은 금식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니네베는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니네베가 재앙을 피한 걸 본 요나는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요나는 성 밖으로 나가 그곳에서 초막을 짓고 성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나 위에 넝쿨이 자라 그늘이 생겼 기 때문에 요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 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에 벌레가 넝쿨을 씹어 먹어 넝쿨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기분이 나빠진 요나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가꾸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은 넝쿨도 너는 아꼈다.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12만 명이나 있고 가축도 많이 있는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력한 군주였던 아슈르나시르팔이 죽자 아시리아는 내분과 반란으로 긴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아시리아 가 약해진 틈을 타 북쪽에서는 우라 르투라는 신생왕국이 아시리아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아시리아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745년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왕 위에 오르자 아시리아는 다시 한 번 도약하게 됩니다. 티글라트- 필레세트는 군대를 재정비했고 상비군의 규모를 크게 늘렸습니다. 기병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티글라트-필레세트 였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아시리아는 북서부 시리아를 병합 했고 페니키아와 시리아 그리고 이스라엘 왕국을 속국으로 만들었 습니다. 기원전 728년 그는 바빌론과 체결한 평화조약을 어기고 바빌론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바빌론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때 무려 15만 명의 바빌로니아인 들이 아시리아로 강제이송됐 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바빌론은 아시리아에 적대감을 품었고 바빌론은 그 후 계속해서 아시리아의 압제에서 벋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