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권력 충돌과 멸망
기원전 722년 사르곤이라는 인물이 아시리아의 왕이 됐습니다. 사르곤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왕이 됐을 때 정통성을 의심받았던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메소포타미아 를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의 왕 사르곤 1세의 이름을 가져왔고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르곤 1세의 우상화 작업도 같이 진행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르 곤이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국경너머에서는 엘람과 이집트 그리고 우라르투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남쪽 바빌론에서는 메로다크-발라단이라는 인물이 왕위에 올라 엘람과 동맹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기원전 714년 사르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르곤의 첫 번째 목표는 계속해서 주변 국가에 반란 을 부추기고 있던 우라르투 왕국이었습니다. 우라르투 왕국으로 쳐들어간 사르곤은 대승을 거뒀 고 대도시 무사시르를 빼앗아 많은 노획물을 챙겨왔습니다. 이때 큰 피해를 본 우라르투는 다시는 이전의 국력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우라르투와 함께 불온한 움직임을 보였던 세력을 평정한 사르곤은 바빌론으로 향했습니다. 바빌론을 지배 하고 있었던 메로다크-발라단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결국 바빌론을 포기하고 엘람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로써 바빌론은 다시 한 번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르곤은 그로부터 얼마 후인 기원전 705년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르곤이 죽자 지칠 줄 모르는 성격의 메로다크-발라단이 엘람의 도움을 받아 바빌론을 탈환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또 다시 아시리아 군에 쫓겨났고 엘람에서 몇 년 뒤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세계의 수도 바빌론을 놓고 뺏고 빼앗기는 역사를 반복하게 됩니다. 계속된 반란으로 아들마저 죽자 아시리아의 왕 센나케립은 충격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바빌론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바빌로니아인의 적개 심에 불을 지필뿐이었고 이것은 이후 아시리아가 멸망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센나케립은 동쪽으로 원정을 떠나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센나케립은 성경에도 등장합니다. 몇 년 전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는 걸 기억한 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겁에 질렸습니다. 히스기야는 왕궁의 장식품과 국가의 보고를 털어 센나케립에게 바쳤지만 센나케립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시리아 군이 철수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성경에는 천사가 내려와 아시리아 병사 18만 5천명 을 죽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센 나케립이 남긴 기록에는 군이 패 했다는 말은 없고 단지 유대왕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가뒀다고 적혀 있습니다. 기원전 681년 센나케립은 신전에서 기도하던 중 아들의 칼에 찔려 죽게 됩니다. 새로 아시리아 의 왕이 된 에사르하돈의 첫번째 명령은 파괴된 바빌론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도시 바빌론 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빌론은 에사르하돈이 죽고 나서야 원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에사르하돈은 생전에 이집트 정복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기원전 671년 에사르하돈은 마침내 군을 일으켜 이집트를 침공했습니다. 아시리아 기록에 따르면 이때 이 들은 이집트에서 머리 둘 달린 뱀 과 날개 달린 푸른 짐승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이집트에 당도한 아시리아 군은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타하르카를 몰아내고 나일강 삼각주 지대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2년 후 남쪽으로 피신해 있던 타하르카가 돌아와 멤피스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에사르하 돈은 다시 한 번 군을 이끌고 이집 트로 향했는데 가던 중 병을 얻어 죽게 됩니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아슈르바니팔이 아시리아의 왕 위에 올랐고 그의 형제 샤마슈슈 무킨은 바빌론의 왕이 됐습니다. 유능한 인물이었던 아슈르바니 팔은 왕이 되자마자 아버지의 숙원이었던 이집트 정복을 달성했습니다. 아슈르바니팔은 동쪽으로 눈을 돌려 엘람으로 쳐들어가 승리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이때 동시 다발적으로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반란 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빌론을 다스리고 있던 그의 형제 샤마슈슈무킨이 바빌로니아인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아 슈르바니팔은 바빌론으로 진군 했고 3년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패배가 명확해지자 샤마슈슈무킨은 자기 몸에 불을 질러 타 죽었다고 합니다. 바빌론을 굴복시킨 아슈르바니 팔은 반란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엘람을 다시 공격했습니다. 승리한 아슈르바니팔은 무자비했습니다. 수도는 철저히 약탈당했고 엘람 왕국은 초토화됐습니다. 이렇게 3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엘람 또한 지도 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여우를 몰아낸 자리에 맹수 두 마리가 들어섰는데 이들은 메디아와 페르시아였습니다. 끊임없는 싸움에 아슈르바니팔은 절망했던 거 같습니다. 아슈르 바니팔은 죽기 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신과 인간을 죽은 자와 산 자를 잘 대접했다. 질병과 고통 불행 이 내게 닥친 이유는 무엇인가 내 나라의 분란과 내 가족의 불화를 참을 수 없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창피한 사건들 때문에 늘 괴롭다. 마음과 육신의 고통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고뇌에 울부짖으며 삶을 마감하는구나. 죽음이 나를 덮쳐 쓰러뜨리는구나. 나는 비탄과 한 탄에 젖어 밤낮으로 울부짖는다 . 신이여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다스리겠습니까. 아시리아는 연이어 승리를 거뒀지만 이상하게 이기면 이길수록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계속된 정복과 공포정치가 아시리아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아시리아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 됐습니다. 아시리아를 무너뜨린 인물은 나보폴라사르라고 불리는 칼데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바로 신바빌로니아의 군주가 되는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나보폴라사르는 동쪽 메디아 왕국의 도움을 받아 오랜 내전으로 약해진 아시리아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613년 두 동맹국은 마침내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함락 했습니다. 고대의 파괴자 아시리아가 멸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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