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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이탈리아 통일 사르데냐 왕국 (가리발디의 역할)

     

     

    사르데냐 왕국

    오스트리아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고 있던 밀라노는 헌법이 발표되고 몇주 후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과 동시에 사르데냐 왕국으로 병합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사르데냐 왕국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들어섰는데 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이라 불린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사르데냐 왕국은 패배했지만 이 전쟁을 통해서 살아야 되냐 왕국은 다시 한번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가 됩니다. 한편 1848년 혁명의 좌절 이후 사르데냐 왕국의 총리로 취임한 카보오르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탈리아인 내부로부터의 통일 운동 뿐만 아니라 외교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나폴레옹 3세의 역시 오스트리아와 대립 관계에 빠져 있다는 것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카보우르는 프랑스 3세와의 협상을 통해서 니스와 사부아 지역을 평소에 양도하는 대신 이후 오스트리아와 전쟁 시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를 빼앗는 데 있어서의 지원을 약속 받게 됩니다.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르데냐 왕국은 1859년 5월 다시 한 번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1차 독립전쟁의 때와는 달리 오스트리아에게 승리를 거둔 사르데냐 왕국은 룸바르디아를 빼앗아 오고 원래의 계획대로 베네치아까지 빼앗아 오려고 했으나 나폴레옹 3세를 제외한 다른 열강들이 회방을 놓으면서 베네치아는 점령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다른 열강들의 경우 이탈리아가 통일되는 것을 굳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르데냐 왕국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파르마, 모데나 그리고 토스카나 등의 이탈리아 다른 지역들에서도 자발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봉기가 일어났고 이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북쪽에서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무르익고 있었을 때 남쪽에서는 스페인에 대한 본격적인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860년 5월 11일 카보우르와 사르데냐 왕국의 지원을 받은 가리발디는 붉은 셔츠단 이라고도 불리게 된 1067명의지원자를 이끌고 시칠리아에서 상륙해서 양시칠리아 왕국에 대한 독립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가리발디는 4월 후에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빠르게 시칠리아를 해방시킵니다. 가리발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이탈리아 본토로 진군 9월에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나폴리를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비록 처음에 가리발디를 지원하긴 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안에 놀라운 성과를 거둔 가리발디는 곧 사르데냐 왕국과 카보우로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는 자칫하면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가리발디와 그의 붉은 셔츠단이 군사적으로 빠르게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와중에 대민 피해를 최소화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가 이탈리아인 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가리발디는 개인적으로 젊은 시절부터 입헌 군주제가 아니라 왕이 없는 공화정 체제를 지지했기 때문에 사르데냐 왕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리발디의 빠른 성공은 너무나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걱정은 기우로 끝나게 됩니다. 양시칠리아 왕국의 영토에서 벌어졌던 국민투표 결과 남부 이탈리아 인들의 다수가 사르데냐 왕국으로의 병합을 원한다는 것을 확인한 가리발디는 10월 26일 나폴리 인근의 테아노에서 당시 사르데냐 왕국의 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만나 그를 이탈리아의 왕으로 직접 받아들이고 그에게 자신이 정복한 남 이탈리아에 대한 모든 영토를 대가 없이 바칩니다. 이를 생각한다면 왜 오늘날 이탈리아 인들에게 가리발디가 통일 영웅으로서 기억되고 존경받는 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이탈리아 통일의 완성을 위해 남은 것은 베네치아와 로마였는데요. 베네치아는 아직 오스트리아의 수중에 있었고 로마는 교황이 통치하는 교황령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1866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프로이센을 지원한 대가로 프로이센이 승리할 때 배네치아를 마침내 병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4년 후인 1870년 이번에는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자 프랑스는 교황령을 지키던 자국의 군대를 재배치 시켰고 이탈리아가 군은 이 틈을 타서 로마 역시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5세기 말 로마 제국 멸망 이후 1400년 만에 마침내 다시 통일된 국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