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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

스페인 통치에 종속된 네덜란드 종교적 갈등 종교 갈등 16세기 초반까지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은 신성 로마 제국과 스페인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지역은 특히 스페인의 통치권 아래에 놓여있었습니다. 스페인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스페인의 왕은 자신을 대신해서 이 지역에 통치를 담당할 통치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긴 했지만 실제로 네덜란드 지역의 정치는 상당 부분 각 지역이 자발적으로 담당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네덜란드 지역이 스페인으로부터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번 스페인 왕에게 보고한 후 결정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17개에 작은 지역 단위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자치권을 누리며 경제적으로.. 더보기
이탈리아 통일 사르데냐 왕국 (가리발디의 역할) 사르데냐 왕국 오스트리아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고 있던 밀라노는 헌법이 발표되고 몇주 후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과 동시에 사르데냐 왕국으로 병합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사르데냐 왕국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 들어섰는데 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이라 불린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사르데냐 왕국은 패배했지만 이 전쟁을 통해서 살아야 되냐 왕국은 다시 한번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가 됩니다. 한편 1848년 혁명의 좌절 이후 사르데냐 왕국의 총리로 취임한 카보오르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탈리아인 내부로부터의 통일 운동 뿐만 아니라 외교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이는 .. 더보기
이탈리아 통일의 초석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영향 이탈리아 통일의 초석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고대 로마제국의 본거지로 써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이탈리아 역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19세기 이탈리아가 어떻게 통일 되었는지에 대해서 정리하였습니다. 근대 이후 통일된 이탈리아를 꿈꾸며 일어난 첫 시도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발생했습니다. 1792년 프랑스에서 공화국이 선포되고 자 이탈리아에서도 통일된 이탈리아를 꿈꾸며 프랑스 혁명을 이탈리아의 이식하고 자 했던 이들이 있었던 것인데요 이탈리아의 자코벵이라 불렸던 이들은 토리노, 나플리 그리고 팔레르모 등지에서 봉기를 일으켰지만 아직 혁명에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던 이탈리아 였기에 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게다가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등장한 나폴레옹은 이탈.. 더보기
바빌론의 성장과 몰락, 페르시아 침공 성장과 번영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하에서 바빌로니아는 다시 한 번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레반트 지역을 평정한 네부카드 네자르는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강력한 라이벌이 었던 메디아 왕국과는 정략결혼을 통해 동맹관계를 이어갔습니다. 바빌로니아는 또 풍요의 땅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막화가 진행됐지만 이때만 해도 이 지역의 땅은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양의 농작물을 생산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자랑은 수도 바빌론이었습니다. 세계의 수도로도 알려 졌던 바빌론은 이슈타르의 문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으로도 유명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내는 정략 결혼으로 메디아에서 온 아미티스 였는데 그녀는 늘 고향의 푸른 초원과 산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더보기
다니엘서와 바빌로니아 역사 바빌로니아 기원전 7세기 중동 지방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시리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중동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잔혹한 공포정치로 그들이 지배 하던 여러 민족들을 탄압했고 이는 당연히 큰 반감을 샀습니다. 아시리아는 군을 파견해 제국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이 이기면 이길수록 더 많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아시리아 에 대한 피지배 민족들의 증오심이 대단했던 겁니다. 이때를 이용해 나보폴라사르가 이끄는 바빌로니아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반란과 내전으로 약화된 아시리아에는 더 이상 반란을 제압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원전 612년 동쪽 메디아 왕국의 도움을 받은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의 수.. 더보기
아시리아 제국의 흥망성쇄 아시리아 권력 충돌과 멸망 기원전 722년 사르곤이라는 인물이 아시리아의 왕이 됐습니다. 사르곤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왕이 됐을 때 정통성을 의심받았던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메소포타미아 를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의 왕 사르곤 1세의 이름을 가져왔고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르곤 1세의 우상화 작업도 같이 진행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르 곤이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국경너머에서는 엘람과 이집트 그리고 우라르투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남쪽 바빌론에서는 메로다크-발라단이라는 인물이 왕위에 올라 엘람과 동맹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기원전 714년 사르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르곤의 첫 번째 목표는 계속해서 주변 국가.. 더보기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군사력 아시리아 세력 기원전 900년경 고대세계는 아직 암흑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바빌로니아는 오랫동안 신흥세력인 아람인과 동쪽 엘람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란 남부에 위치했던 엘람 제국은 수천 년간 바빌로니아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던 고대 문명이었 습니다. 기원전 1157년 엘람은 카슈 인을 몰아내고 몇 십년간 바빌론 을 통치했습니다. 30년이 흐르고 난 뒤에야 바빌로니아인들은 바빌론을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아시리아 또한 주변 세력의 침략을 받고 침체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전통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군대가 뒤를 받쳐주고 있어서였습니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 더보기
고대 중동의 군사적 격변 (아시리아, 히타이트) 중동 제국들의 세력 경쟁 고대 세계를 제패했던 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포의 제국 아시리아였습니다. 물론 아시리아 외에도 수많은 고대 문명들이 나름 의 영향력을 형사하고 있었습니다. 남쪽 아프리카에는 오랜 역사와 풍요를 자랑하던 이집트가 있었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 였던 바빌론이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밖에 많은 세력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만큼 고대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문명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시리아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4천 년 전인 기원전 1755년 바빌론의 왕이었던 함무라비는 주변세력을 모두 병합하고 바빌로니아 전 지역을 통일 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군주였던 함무라비가 죽자 바빌론 제국 에 곧바로 위기가.. 더보기
메소포타미아의 성장 바빌로니아 권력 변화 바빌로니아 역사적 전환 기원전 2300년 사르곤은 수메르와 아카드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그가 통치한 이 지역은 이후 바빌론의 이름을 따 바빌로니아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가 이름을 빌린 도시 바빌론은 아직 기록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불과 했습니다. 사르곤은 바빌로니아 정복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진군해 서쪽으로는 지중해 그리고 동쪽으로는 엘람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고 합니다. 특히 엘람은 이란 남부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라이벌 관계였을 정도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사르곤은 생전에 총 34번의 전투를 치렀다고 하는데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르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나람 신의 통치하에 아카드.. 더보기
메소포타미아 고대 문명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역사 문명의 시작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오늘날 황량한 모래 사막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보면 이곳이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상지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까마득한 옛날인 기원전 4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찬란했던 하이테크 고대문명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바빌로니아 문명이었습니다.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인간이 본격적인 농경생활을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6000년경이었습니다. 작은 운하를 만들어 강물을 끌어 들이는 것이 가능해지자 척박했던 메소포타미아 남부에까지 점차 많은 거주지가 생겨났고 그 결과 이 지역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났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000년 경에 인류 최초의 도시 우루크가 세워졌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수메르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이때가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이었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