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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성장과 몰락, 페르시아 침공 성장과 번영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하에서 바빌로니아는 다시 한 번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레반트 지역을 평정한 네부카드 네자르는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강력한 라이벌이 었던 메디아 왕국과는 정략결혼을 통해 동맹관계를 이어갔습니다. 바빌로니아는 또 풍요의 땅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막화가 진행됐지만 이때만 해도 이 지역의 땅은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양의 농작물을 생산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자랑은 수도 바빌론이었습니다. 세계의 수도로도 알려 졌던 바빌론은 이슈타르의 문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으로도 유명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내는 정략 결혼으로 메디아에서 온 아미티스 였는데 그녀는 늘 고향의 푸른 초원과 산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더보기
다니엘서와 바빌로니아 역사 바빌로니아 기원전 7세기 중동 지방은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아시리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중동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잔혹한 공포정치로 그들이 지배 하던 여러 민족들을 탄압했고 이는 당연히 큰 반감을 샀습니다. 아시리아는 군을 파견해 제국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이 이기면 이길수록 더 많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아시리아 에 대한 피지배 민족들의 증오심이 대단했던 겁니다. 이때를 이용해 나보폴라사르가 이끄는 바빌로니아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반란과 내전으로 약화된 아시리아에는 더 이상 반란을 제압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원전 612년 동쪽 메디아 왕국의 도움을 받은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의 수.. 더보기
아시리아 제국의 흥망성쇄 아시리아 권력 충돌과 멸망 기원전 722년 사르곤이라는 인물이 아시리아의 왕이 됐습니다. 사르곤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왕이 됐을 때 정통성을 의심받았던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메소포타미아 를 최초로 통일한 아카드의 왕 사르곤 1세의 이름을 가져왔고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르곤 1세의 우상화 작업도 같이 진행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르 곤이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국경너머에서는 엘람과 이집트 그리고 우라르투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남쪽 바빌론에서는 메로다크-발라단이라는 인물이 왕위에 올라 엘람과 동맹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기원전 714년 사르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르곤의 첫 번째 목표는 계속해서 주변 국가.. 더보기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군사력 아시리아 세력 기원전 900년경 고대세계는 아직 암흑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바빌로니아는 오랫동안 신흥세력인 아람인과 동쪽 엘람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란 남부에 위치했던 엘람 제국은 수천 년간 바빌로니아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던 고대 문명이었 습니다. 기원전 1157년 엘람은 카슈 인을 몰아내고 몇 십년간 바빌론 을 통치했습니다. 30년이 흐르고 난 뒤에야 바빌로니아인들은 바빌론을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아시리아 또한 주변 세력의 침략을 받고 침체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전통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군대가 뒤를 받쳐주고 있어서였습니다. 아시리아의 군대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 더보기
고대 중동의 군사적 격변 (아시리아, 히타이트) 중동 제국들의 세력 경쟁 고대 세계를 제패했던 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포의 제국 아시리아였습니다. 물론 아시리아 외에도 수많은 고대 문명들이 나름 의 영향력을 형사하고 있었습니다. 남쪽 아프리카에는 오랜 역사와 풍요를 자랑하던 이집트가 있었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 였던 바빌론이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밖에 많은 세력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만큼 고대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문명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시리아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4천 년 전인 기원전 1755년 바빌론의 왕이었던 함무라비는 주변세력을 모두 병합하고 바빌로니아 전 지역을 통일 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군주였던 함무라비가 죽자 바빌론 제국 에 곧바로 위기가.. 더보기
메소포타미아의 성장 바빌로니아 권력 변화 바빌로니아 역사적 전환 기원전 2300년 사르곤은 수메르와 아카드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그가 통치한 이 지역은 이후 바빌론의 이름을 따 바빌로니아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가 이름을 빌린 도시 바빌론은 아직 기록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불과 했습니다. 사르곤은 바빌로니아 정복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진군해 서쪽으로는 지중해 그리고 동쪽으로는 엘람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고 합니다. 특히 엘람은 이란 남부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라이벌 관계였을 정도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사르곤은 생전에 총 34번의 전투를 치렀다고 하는데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르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나람 신의 통치하에 아카드.. 더보기
메소포타미아 고대 문명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역사 문명의 시작 바빌로니아와 수메르 오늘날 황량한 모래 사막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보면 이곳이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상지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까마득한 옛날인 기원전 4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찬란했던 하이테크 고대문명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바빌로니아 문명이었습니다.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인간이 본격적인 농경생활을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6000년경이었습니다. 작은 운하를 만들어 강물을 끌어 들이는 것이 가능해지자 척박했던 메소포타미아 남부에까지 점차 많은 거주지가 생겨났고 그 결과 이 지역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났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000년 경에 인류 최초의 도시 우루크가 세워졌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수메르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이때가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이었는.. 더보기
페리클레스 인물 (추대사) 페리클레스 기원전 446년 스파르타와 아테네 양국은 30년 휴전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 덕분에 양국은 얼마간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도 아테네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력을 넓혔는데 이들의 다음 희생양은 사모스였습니다. 사모스는 밀레토스와 더불어 이오니아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아테네는 사모스에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직접 함대를 이끌고 원정에 나선 페리 클레스는 여러 번의 전투 끝에 사무스를 굴복시켰습니다. 이 전쟁으로 아테네는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차지했습니다. 페리 클레스 자신도 이오니아 최대의 도시를 정복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페리클레스 통치하에서 아테네는 번영.. 더보기
아테네 키몬과 페리클레스 키몬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기세를 몰아 바다에서도 페르시아군을 격파했습니다. 그러자 이오니아와 아이홀리스 그리고 에계헤에 있는 많은 도시들이 그리스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본 건 아테네였습니다. 그때까지 그리스의 맹주는 단연 스파르타였습니다.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스파르타는 그리스 연합군의 대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는 가장 많은 함선을 보였음에도 군의 지휘권을 항상 스파르타의 양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파르타 특유의 결정 장애와 지휘관의 기행으로 스파르타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 합류한 도시 대부분이 스파르타가 아닌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이로써 막대한 재원과 군사력을 등의 업은 아테네는.. 더보기
두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파우사니아스의 마지막 테미스토클레스와 파우사니아스의 최후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어서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격파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페르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페르시아는 30만 병력 중에서 먼저 도망친 4만을 제외한 거의 전원이 전사는 괴멸적인 피해를 받습니다. 파우사니아스는 마르도니오스가 남긴 식기와 가구를 보자 마르도니오스에게 올렸던 것과 똑같은 요리를 내오라고 했습니다. 곧이어 요리사가 페르시아 시계에 담긴 산해진미를 대령가자 파우사니아스는 그 화려함에 경악했습니다. 장난삼아 그 옆 테이블에 스파르타 음식을 나란히 올려놨었는데 그 차이가 너무 심해서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계기가 돼서였는지 카오사니아스는 이때부터 수상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플라타이에서 뒷정리를 끝.. 더보기